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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완료/창간호

[1호]나의 외국어 방랑기 - (1)아랍어, 일본어

저와 외국어는 원래 서로를 소 닭 보듯이 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피씨통신을 하는 사람이 반에서 한 두 명 수준일 때였습니다. 제가 고향에서 다니던 도서관은 길이 잘 뚫리기 전이라서 차마 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습니다. 즉, 외국어를 접할 수 있는 곳은 서점 뿐이었습니다. 고향에서 서점에 가 보면 영어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다음이 일본어, 그 뒤를 쫓아 중국어와 프랑스어가 있었습니다. 제 고향에서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던 학교는 딱 한 곳 뿐이었고, 나머지 학교는 전부 프랑스어와 일본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칠 때였습니다. 그때는 제 고향에 제2외국어로 중국어도 없었을 때였습니다.

저의 적성은 너무나 완벽한 이과였고, 영어에는 정말 소질이 없는데다 공부 자체도 상당히 싫어했습니다. 문법, 어휘 모두 바닥을 박박 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평준화지역이라서 연합고사를 치루었는데, 제가 중3때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의고사가 있었고, 매주초 '주초고사'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주초고사에 대한 설명 이전에 연합고사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연합고사는 3시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첫 시간의 주요과목은 국어, 도덕, 사회, 두번째 시간의 주요과목은 수학, 세번째 시간의 주요과목은 영어와 과학이었습니다. 이것을 매주 월요일 아침, 한 시간씩 시험을 치루는 것입니다. 3주간 매주 월요일에 주초고사를 치루고, 한 주는 모의고사를 치루면 한 달에 모의고사를 두 번 치루는 꼴이지요. 저는 다른 점수들보다 영어가 낮다고 혼났고, 내신에서 영어를 중학교 3학년때 이미 60점대를 찍었기 때문에 영어로 인해 많이 혼났습니다. 그때는 연합고사에 오직 체육만 내신이 반영될 뿐이어서 60점대는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체육은 만점 20점이라는 거대한 비중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신 100%였습니다. 정말 전교에서 손가락으로 꼽힐 정도만 체육 18점을 받고, 나머지는 19~20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저와 같이 앉게된 짝은 일본어를 상당히 잘했습니다. 중학교때부터 오락을 위해 일본어를 공부했다고 했습니다. (일본어를 어린 나이에 시작했다고 하면 대부분이 만화와 오락, 이 둘 중 하나에 포함될 것입니다-_-;;)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어는 국내용이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하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일본어를 잘 하는 녀석과 같이 앉게되자 자연스럽게 일본어에 관심이 가더군요. 역시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친구의 영향이 큽니다...;;

일본어 히라가나는 중3때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아는 녀석과 내기를 해서 하루만에 외운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어 공부는 상당히 빨리 진행되었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열정만 가지고 덤볐는데, 그것이 먹히더군요. 고1때는 집에서 맨날 집에 늦게 들어오고 논다고 집어넣은 학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학원에서 11시 반까지 잠만 펑펑 자고 돌아왔습니다.) 학원에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잘 준비를 다 하면 자정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새벽 2~3시까지 일본어를 공부했습니다. 눈을 떠 있을 때는 무조건 일본어 공부였습니다. 아마 그 열정으로 다른 외국어들도 공부했다면 어마어마한 괴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밥 먹을 때도 일본어, 화장실에서 볼일볼 때도 일본어, 학교에서도 일본어, 학원에서도 일본어...짝이 간단히 조사를 정리해 주고, 일본어 교재를 주어서 그것을 보다가 '일본어 작문의 급소 190'과 '일본어 문법의 급소 31'을 구입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한사전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사전을 통째로 외운 것은 아니고 중요단어라고 별표 1~2개 있는 단어만 싸그리 외웠습니다. 이건 지금 제가 생각해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1999년이 끝나기 전에 일본어 작문의 급소 190, 일본어 문법의 급소 31, 그리고 일본어 사전에 별표 그려진 단어 전부를 외웠습니다.

일본어 실력의 급성장에 상당히 만족하며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문과를 지원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문과에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친한 친구들 전부 문과로 가길래 문과로 갔습니다. 이 때문에 부모님과 다투었습니다.

달릴 때 멈추면 더 달릴 수 없다.

이렇게 미친듯이 일본어 공부를 했지만, 단 한 번의 판단착오로 인해 일본어와 멀어져버리게 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제가 가지고 있던 교재 2권으로 JLPT 2급을 커버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에게 2급과 3급의 벽은 엄청나게 높았습니다. 2급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주변 서점에서 서적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중3~고1에 인터넷 전용선과 피씨방이 널리 보급되기는 했지만, 아직 저에게 인터넷이 친숙한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인터넷을 하기 위해 다른 친구네 집에 놀러가는 것은 신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1998년, 제1차 한일문화개방 이후, 일본어를 공부하겠다는 사람이 꽤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지만, 제 고향은 그때만 해도 인구가 매우 적었습니다. 일본어를 공부하고 싶으면 학원에 가고, 학원에서는 교재를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저는 집에서 제가 일본어 공부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학원 가는 것은 고사하고 일본어 교재를 사는 것조차도 눈치가 보였습니다.

서점에 가 보니 1,2급 문법을 다룬 책은 보이지 않고, 1,2급 문제집만 있더군요. 2급 문제집을 펼쳐보았습니다. 엄청나게 어렵다못해 끔찍할 정도이더군요. 이때 판단착오가 발생했습니다. 2급이 지루하더라도 계속 해나갔어야 했는데, 기초가 부족한 것이라고 오판한 것이었죠. 4급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김빠지는 공부가 되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휘실력이 팍 죽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전을 통해 외운 단어들 가운데 대부분이 3,4급 문제집에 나오는 단어가 아니었지만, 일본어라고는 사전과 위에서 언급한 두 권의 교재, 그리고 3,4급 문제집이 전부였기 때문에 어휘실력이 팍 죽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죠.

그래서 일본어는 2학년 1학기에 있었던 교내 일본어 경시대회 은상을 마지막으로 접었습니다. 전력으로 달리다가 멈추고 잠시 뒤로 돌아가면 더 달릴 수 없는 법이지요.

영어는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50점을 시작으로 끊임없는 하락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때는 발악을 해서 70점대를 받았고, 1학년 2학기 중간고사때는 40점대 초반을 찍었습니다. 정말 죽기살기로 발악해서 교과서를 통째로 다 외워서 치루었던 1학년 2학기 기말고사때, 오지선다형 문제가 전부 수업시간에 나누어주었던 유인물에서 나오는 바람에 주관식 문제를 다 맞고도 40점대 중반을 찍고 한글 서열 제 1등을 받는 기염을 토했습니다...(그때 모두가 황당해 했습니다. 주관식은 다 맞고 오지선다형을 거의 0점맞는다는 것은 상식선에서 일어나기 힘들죠...수업시간에 잠자거나 일본어만 공부하고 유인물은 모두 버려버렸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였습니다.) 수행평가라고 실시한 쪽지시험 10문제를 풀어서 4^10/5^10의 확률에 당첨되는 영광까지...(수치상 확률은 저렇게 높지만 실제로 저렇게 나올 확률은 크게 높지 않습니다...;;)

고2때부터는 외국어를 특별히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일본어로 '나도 외국어를 할 수 있다'라는 뿌듯함만 얻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고2말, 모의고사를 치루었습니다. 배치표를 보면서 가고 싶은 학과를 적으라고 하더군요. 마땅히 가고 싶은 학과가 없었을 때였습니다. 건성으로 슬슬 보다가 갑자기 땡기는 이름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랍어과'...그래서 아랍어과를 지원했고, 합격점이 나오더군요. 그때만 해도 정말 비전없던 아랍어과를 가겠다고 해서 부모님과 대판 다투었습니다. 그래도 결국은 아랍어과로 갔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왜 아랍어과로 갔냐고 물어보면 솔직히 참 난감합니다. 이런 어이없는 이유로 진학한 것이다보니...정말 순간적으로 땡기는 이름을 보고 모의고사에서 계속 지원하다가 정말 가고 싶어져서 간 것이 '아랍어과'입니다. 뭐 중동에서 오일머니를 벌어오기 위해, UN이 정한 6개 공용어라든지...이런 거 하나도 모르고 갔습니다. (아직도 개인적으로 아랍어에 따라오는 저런 홍보성 미사여구를 보면 심히 보기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외화내빈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랍어과에 입학하면 제1의 꿈은 '통번역대학원 입학'이라는 말에 '통번역대학원'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이름이 땡겨서 계속 쓰다보니 가고 싶어져서 갔을 뿐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대학가서 아랍어를 배우고 싶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큰누나가 제가 고3때 아랍어 교재 한 권을 인터넷 주문으로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MJ출판사 책이었습니다. 글자는 다 외웠습니다. 쓰는 법도 제대로 나와있지 않더군요. 문제는... لا

이 لا라는 글자 아래 독음으로 '라'라고 적혀는 있는데, 왜 저 글자가 '라'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습니다. 바로 혼란상황...저것은 왜 '라'라고 읽는 것인가? 분명히 글자에 없는데...

저 글자 때문에 고3때의 아랍어 공부는 글자를 외우고 키탑이 책이라는 것, 아나가 나이며, 안타, 안티가 너라는 것만을 알고 마침표를 찍었습니다.